걷기명상

[스크랩] 학교 폭력(청소년 폭력) 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한 치열한 고민

발란스짱 2013. 7. 19. 10:43

가장 먼저 용어에 관한 표현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학교 폭력....

청소년 폭력이라고 바꾸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폭력이라고 말은 왜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일으키는 문제라는 데서 출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떻게 ‘학교 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가장 많이 드나요? 학교가 폭력을 가르치고 학교라는 공간에서만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으시는지요?

중 3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친구의 말은 큰 의미를 가집니다.

“엄마, 나는 크게 그런 거 모르고 학교 잘 다녔는데 텔레비전에서 매일 학교 폭력 학교 폭력 하니까 정말 학교가 무서워지는 거 있지.”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도 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이들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개학을 하고 나면 학교에 다녀야 하는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대해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절실합니다.

아이들이 폭력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서 와서 폭력을 배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건들을 보고에 의해 아시겠지만 교실과 학교내에서 뿐만 아니라 공원과 같은 학교 밖, 심지어는 아이들의 집에서까지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면 이것은 학교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라면 학교 폭력이 아니라 학생 폭력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학생들은 청소년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면 ‘청소년 폭력’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면죄부를 받으려고 이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넓게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이라는 말에는 학교가 원인이고 그 해결방안도 학교 안에서 찾아야한다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면 절대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제부터 각 부분별로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접근 방법은 세 방향으로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첫 환경인 가정과 부모로의 접근

둘째, 교육이라는 목표 하에 아이들이 모인 학교로의 접근

셋째,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사회로의 접근

 

 

1. 아이가 태어난 첫 환경인 가정과 부모로의 접근

가. 부모와의 소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10대 자녀가 있는 분들께 물어봅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일들을 같이 하셨는지요? 아이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아이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지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와 함께 어떤 영화를 보셨습니까?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서 시장을 같이 본 적은요?

집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같이 운동을, 아니 걷기라도 같이 하신 적은요?

아이와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읽을 책을 고른 적은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요?

아이가 인터넷을 할 때 가장 즐겨가는 곳이 어딘 지 아십니까?

아이의 싸이 홈피나 블로그를 얼마나 자주 가보십니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이고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의 mp3에 어떤 노래들이 저장되어 있는 지 같이 들어 보신 적은요?

아이가 지금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 지 아십니까?

아이와 노래방에 같이 가서 탬버린을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른 적은요?

아이가 휴대폰 잠금이 되어 있다면 그 이유가 부모님 때문은 아닌지요?

아이가 금발로 염색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과연 부모님들은 10대의 아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3월 중순 즈음 학부모회가 있어 어머니들이 학교에 오셨는데 한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장실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휴지통 밖으로 나와 있는 휴지도 기도 안차지만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정말 학교가 뭐하는 건지...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건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학교가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고?

자신이 사용한 휴지를 휴지통에 넣는 것이나 사용한 생리대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이 화장실을 그렇게 더럽게 쓰는 것을 담임이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으니 이 모든 책임은 학교와 담임에게 있다?

저는 이 문제와 학교 폭력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의 시작은 가정과 부모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폭력의 ‘폭’자도 모른 채 잘 자라서 학교에 왔는데 갑자기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렇게 된 것일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전에는, 아니 집에서는 휴지통에 제대로 버리고 생리대도 깔끔하게 처리하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변한 것일까요? 부모님들은 제대로 잘 가르쳐 집에서는 잘 하지만 학교 선생들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서 학교 화장실은 그렇게 더럽게 사용하는 것일까요?

물론 교사들이 화장실 사용 지도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그것은 가정에서 제대로 배워왔다면 가르칠 필요성조차도 없는 문제이고, 다 잘 배운 아이들 틈에 몇몇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학교와 교사들의 잘못입니다. 이 문제는 조금 뒤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깁니다. 가해자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받고 정서적으로 따듯한 배려를 받으면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쪽만을 보고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는 어떨까요? 청소년 폭력에 관한 기사에 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담임이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말입니다. 몰랐다고 해도 절대 그 비난을 비켜갈 수는 없습니다. 비난이 화살이 아니라 폭탄이 되어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한 학기, 또는 몇 년 동안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도 같이 있지 못하는 담임이 알지 못했던 것은 그렇게 비난을 받을 일인데 태어나 십수년동안 같이 살고 있고, 담임보다 몇 배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부모님들이 몰랐다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그들은 아이와 함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부모님들입니다. 내 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로 놀라고 상처받은 피해자의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다 그렇다는 것도 절대아니지만 분명 이 부분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비록 전부가 아닌 일부라 할지라도 이 부분은 냉정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그 누구에게도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가족들에게는 도움을 청할 수 있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부모님들이 걱정하실까봐 말씀 드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상태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부모님들을 더 먼저 걱정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 글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돌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당했는데 어딜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살 떨리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느냐고, 목숨이 여러 개인지 묻고 싶다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제가 만났던 많은 피해자 부모님들로부터 적지 않게 들었던 말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이를 정말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부모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당신들의 귀한 자녀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그 현실 앞에서 어떤 말씀, 어떤 행동을 하실 것 같습니까? 상상하기 싫다고 하시며 외면할 문제가 절대 아니랍니다. 지금의 현실은 슬프게도 내 아이는 절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닐 거라는 생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방향을 조금 틀어 이 질문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 폭력에 관한 사건들을 다른 기사를 보면서 자녀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요?

“세상 참 말세다. 깡패가 따로 없네. 넌 절대 저런 애들과 어울리지 마. 그리고 친구 돕겠네 어쩌네 하면서 괜히 끼여 문제 일으키지도 말고. 넌 그냥 모른 척 가만히 있어, 알았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본 텔레비전 앞에서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부모님들과의 소통의 부재라는 말을 떠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떠세요? 저 어머니의 말씀에는 내 아이가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피해자일수도 있을 겁니다. 그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이 이렇게 힘들어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쩌면 가해자일수도 있어요. 친구의 고통을 보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아이일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넌 이렇게 해, 라고 말하는 어머니 앞에서 아이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과연 이 문제를 가지고 10대의 자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며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어 본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내 아이는 절대 아닐 것이기 때문에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이들이 자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그 전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당신들의 귀한 자녀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그 현실 앞에서 어떤 말씀, 어떤 행동을 하실 것 같습니까? 학교로 달려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학교는 뭐하고 있었느냐고 고함지르는 것 말고, 가해자를 찾아가 나무라는 것 말고, 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느냐며 상처 받아 울고불고 분노하는 것 말고, 내 앞에 앉은, 상처 받은 내 아이를 어떻게 도와주겠습니까? 어떻게 하실 건지 종이를 들고 적어보아도 좋고, 더 좋은 것은 부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이것으로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부모님들이 재대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아이들은 부모님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학부모 교육을 가면 꼭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중 3 아이가 갑자기 업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니가 애가? 다 큰 것이 업히기는 무슨. 시끄러워.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공부해.”

아이들은 어른들을 수없이 시험에 들게 합니다. 수없이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부모님들이 그것이 신호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아이들에게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통의 방법을 어른들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청소년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당장 하루 아침에 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청소년 폭력 근절’이라는 현수막 하나로, 몇 몇 사람들의 구호로, 교육청 공문 등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야기 해주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프지만 환부가 드러나야 그걸 치유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이제라도 이렇게 힘들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신같이 때리고 다녀도 신통찮은 판국에.... 내가 속이 터진다 터져. 기껏 있는 거 없는 거 끌어모아 저 하나 잘되라고 뒷바라지 하는데.... 못난 놈.”

이렇게 아이를 나무라는 부모님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집구석에서 자식새끼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고 뭐 했어?”

로 시작하여 만신창이가 된 아이 앞에서 서로를 향해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부모님들도 적지 않습니다.

“전 정말 우리 애를 믿었어요. 어디 한 군데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지 한테 못해주는 것도 아니고. 우린 정말 애를 너무 믿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이리. 우리 믿음을 이렇게 무참하게 깨버리는 건지.....”

이런 부모 앞에서 아이들은 다음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가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그 어떤 모습도 받아주고 들어주며 제대로 도와 줄 수 있는 부모님이 지금 가장 절실합니다.

가해자라 이름 붙여진 아이들도 결국은 어른들로 인해 제대로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치를 정립하지 못한 또 다른 개념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고 부모들을 교육의 장으로 참여하게 하는 방법

(가) ‘우리 아이는 문제없다’에서 출발하는 부모 교육의 필요성 인식 부재 해결 방법

(나) 인식은 하지만 어떻게 교육 받을 수 있는가의 방법적인 어려움과 비용

(다)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내를 가진 지속적인 교육을 이끌어갈 주체

이런 문제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부모 교육에 대한 인식조차 없거나 가족의 구성원적인 원인으로 그럴 수 없는 가정의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기본적인 인성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학교의 역할은 이 부분을 맡아 잘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최고의 부모’라는 말 부모 교육보다 앞서야 할 것이 부부 교육

 

나. 교사를 비난하면서 아이에게는 교사가 되라고 권하는 부모

부모님들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입시위주의 교육이,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가 우리 청소년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한 커다란 스트레스가 청소년 폭력의 한 원인이라고 말하며 학교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학교로 하여금 입시위주의의 교육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중학교는 각 교과별로만 석차가 나옵니다. 국어 몇 등 영어 몇 등.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 석차를 원하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반에서 몇 등, 전교에서 몇 등인지를, 그 석차를 꼭 알고 싶어 합니다.

학기 초에 아이들의 선수 학습 정도와 관계 형성 등의 이유로 교과서 진도를 바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장 교장실로 전화 옵니다. 수업은 안하고 뭐하느냐고? 저는 분명 수업을 하고 있는데 수업은 왜 안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과학은 계절적인 요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계절에 맞추어 교과서 진도를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시 교장실로 전화 옵니다. 학원진도와 맞지 않으니 그 선생보고 교과서 순서대로, 학원 진도와 발맞추어 진도 나가게 하라고 말입니다.

종례 후 훈화가 길어지면 난리 납니다. 학원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담임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고. 꼭 해야겠으면 우리 아이만이라도 중간에 나와서 학원 차 타게 해달라고 합니다.

학부모님들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고 좋은 성적 받도록 학교와 교사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런 간곡한(?) 부탁을 해놓고 성적위주의 학교라서 석차만 따지는 담임이라서 아이들이 불행하니 당신들이 책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훈화도 하지마라 수업시간에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진도 열심히 나가라고 해놓고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안 해서 이렇다고 또 책임지라고 합니다.

이제 와서는 성적도 좋고 인성도 잘 갖추도록, 둘 다를 잘 할 수 있는 학교와 교사여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안 되는 교사들은 다들 그만두라고 합니다.

아이들만 남게 되는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내 아이는 교사가 되기를 바라고 권합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고교생 선호도 1위 직업 교사, 부모 선호도 2위 직업 교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사회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로 인해 학교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가지 몰고 갔다고 교사들을 아프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인터뷰에서도 아이들이 학교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왜? 무엇 때문에 교사가 되려고 할까요?

기사에 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는 한 학생의 이유는 이랬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요. 정년퇴임 그 전까지는 일단 심각한 일이 아닌 이상은 안정적으로 계속 직업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학부모들은 교사가 도대체 뭘 하느냐, 제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비난을 하면서 내 아이는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안정적이고 편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와 함께.

지금 저희 교사들을 맹비난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분명 내 아이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분은 당신의 아이가 어떤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면서 권하는 교사라는 직업.... 어느 정도로 하면 편안한 직업이 되는 걸까요? 편안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서 정년까지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가르치실 것인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은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싫은 학교와 교사를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시켜보고자, 학생이 아닌 교사가 되어서 현장에 오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교사가 되기를 권하시는 부모님들도 당신 자녀들이 가진 세상을 보듬을 수 있는 따듯함을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 힘들지만 풀어내며, 실천하며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힘든 길인 줄 알지만 소명감을 가지고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거라 믿고 싶습니다.

 

학부모들과 학교의 소통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나름 학부모님들과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학부모님들께 받은 선물 중 두 개를 소개합니다. 시를 좋아한다는 담임을 위해 시집을 뒤져 멋진 시를 선물해주시는 **어머니께서 주신 시 중 하나입니다.

인연 - 조선윤

 

세상에 태어나서

가는 길은 다르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만남 속에

스치는 인연도 있고

마음에 담아두는 인연도 있고

잊지 못 할 인연도 있다

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난다 해도

다시 반기는 인연되어

서로가 아픔을 외면하지 않기를

인생길 가는 길에

아름다운 일만 기억되어

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그리고 이 사진을 보아주십시오.

 

 

이 사진으로 촌지 받는 교사로 징계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공개를 합니다.

 

##어머니께서 한 올 한 올 손수 예쁜 케이프를 만들어 보내신 것입니다.

이 두 아이는 저희 반의 실장이나 부실장도 아니고 공부를 1, 2등하는 아이들도 아닙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단지 좋은 성적이라면 이 부모님들은 이런 심정이어야 할 겁니다.

‘내 아이가 공부도 못하는데 담임이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저는 모든 아이들이, 비록 공부는 꼴찌를 하는 아이일지라도 부모님들과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하고, 학교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서로 의논하면서 왔습니다.

그리고 담임의 일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학부모 감독을 모시는 일입니다. 학교마다 조금씩은 다를지 모르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저희 반은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두 분 모두가 계시지 않는 아이가 13명이나 되는 반이었습니다. 게다가 거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었고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담임의 고충을 덜어주시려 4번의 시험 때 마다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주셨고, 아버지 감독이 세 분이나 오시는 특이(?)한 상황도 있었고 더 감동이었던 것은 오시겠다는 분들이 많으셔서 학부모감독을 모시기 어려운 학급을 위해 저희 반 부모님들이 대신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학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경험 한 적이 이/ㅅ는 아이가 중학교에 와서 친구들이 생겨 너무 좋다며 써 준 감동의 편지.

 

 

 

자신들을 향해 늘 웃어준다고 반 아이들이 그려 준 저의 모습입니다. 손으로 만든 하트가 감동이었지요.

 

 

저희 반 아이가 방학동안 참여한 캠프에서 저에게 주려고 만든 상장이라고 합니다. 상장 만들면서 보내온 카톡과 상장입니다.

 

 캠프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완성하지 못했는데 25일 학교에 올 때는 더 멋지게 꾸며서 제게 상장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 시진은 2년 동안 저와 수업한 3학년이 준 편지.

 

  아이들이 저의 모습을 넣어 만들어 준 컵과 컵이 든 박스에 적힌 편지들.

 

이렇게 나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과 잘 소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래 글은 종업식을 하던 12월 28일 학부모님께 드린 편지의 일부입니다.

 

어제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어 말씀을 드립니다. 아이가 담임이 반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교실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전했고 부모님은 너무 한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분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겠다 싶어 자세히 설명을 드립니다.^^

제가 2차 지필고사 시험이 끝나고 아침 시간 10분에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교실 문 밖에서 잠깐 인사만 했지요.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담임이 학급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나 봐요. 제가 아침 10분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맡긴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실장과 부실장에게 학급 운영을 전적으로 맡겨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었고, 더 큰 다른 하나는 매일 아침 독서다 글쓰기다 다른 반은 안하는 것들을 시키면서 빡빡하게 군 담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마녀 담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그래서 그동안 힘들게 저의 강행군에 따라 준 아이들에게 일주일 정도 마음껏 아침 시간 10분 동안 자유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학급에 신경을 쓰지 않는 담임이 되어버리더군요.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인 공주들에게 저는 영원히 점수 따기는 글렀나 봐요.ㅎㅎ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와 담임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주시고,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서운하거나 불만이 있거나 할 경우 그냥 마음속으로만 담고 계시기 말고 꼭 의견을 내어주십시오. 학부모님들의 솔직한 의견 제시는 너무도 중요하답니다. 그게 바로 학교와 학부모님과의 제대로 된 소통의 시작이니까요. 이번 일처럼 저는 분명 이유가 있었는데 부모님들은 서운하다 하시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 안 되니까요.

저는 학부모님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저희를 되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오해가 있다면 풀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수많은 문자를 보낸 이유도 부모님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잘 도와주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기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학부모들과 학교와의 소통과 솔직한 서로간의 의사교환은 정말 중요합니다. 교사들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것인데 아직도 학부모님들은 학교의 문턱을 너무 높게 생각합니다.

학부모 감독이 왜 생겼을까요?

학교의 공정성을 믿지 못해 결국은 도입하게 된 것이 학부모 감독이라는 제도이지만 학부모님들은 요구는 해놓고 자신은 참여하지 않습니다. 분명 학부모님들의 요구에 의해 생겨났지만

“이런 걸 만들어 오라가라 난리야. 학교가 알아서 하지...”

“나 아닌 누군가는 하겠지.”

“공부 잘 하는 엄마들이, 학급 간부 엄마들이, 먹고 사는 거 바쁘지 않은 여유 있는 엄마들이 하겠지....”

물론 학교가 절대적인 신뢰를 주었다면 이런 일을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하겠지만 함께 방법을 찾아보고자 낸 학부모감독제도인데 이것을 위해 담임은 몇날 며칠 전화통을 붙들고 집집이 전화를 걸어 고개를 조아리며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부모님들은 부모님들대로 사정이 있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거절하고 난 뒤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겁니다.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학교에 대한 감정이 불편해진다는 것입니다.

“에휴, 학교가 알아서 좀 하지... 왜 이런 걸 만들어 가지고.... 담임이 혹시 이 일로 우리 애한테 나쁜 감정을 가지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아이의 문제로 인해 담임에게 전화를 한 번 걸려고 해도

“지난 번 시험 감독도 안 갔는데... 이런 거 묻는 전화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그래, 괜히 전화했다가 관계만 더 나빠질 수 있으니 그냥 말자.”

점점 학교와 학부모님들 사이의 벽은 커질 수밖에 없겠지요.

교육청에서는 학교보고 학부모와 함께 하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이 열리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학교와 교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2) 학교와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이중적인 잣대

(3)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위한 사회적 지원

- 학교와 학부모는 분명 소통하고 연계해야 하고 많은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바빠, 직장에 매인 몸이라 아이는 학교에서 알아서, 라는 생각이 결국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가 가정의 중요성의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가장 기본 구성단위인 가정을 지켜주지 못할 때 그 사회 전체는 분명 엄청난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출을 하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고 난 뒤 많은 부모님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찾아 나서거나 그동안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해주기 위해,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당신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니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던 무엇을 하던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식의 인식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님들이 아이의 문제로 인해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조성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부모가 아이의 학교를 방문하는 일에 관해서는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인이 눈치를 보면 조퇴나 외출을 해야 하는데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뭐 그런 일로 직장 일에까지 지장을 주느냐는 식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사회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지원이 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 교육을 다룬 책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유대인 아버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록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일찍 집으로 돌아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3. 교육이라는 목표 하에 모인 학교로의 접근

제가 생각하는 학교의 역할은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 가정에서의 기초적인 교육위에 가족을 넘어선 관계형성 및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따듯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곳

2. 진로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하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는 이렇습니다.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양성’

목표뿐만 아니라 그 내용들을 수 십 번 프린트한 종이가 파슬파슬하게 일어나도록 읽고 또 읽어보아도 학교에 오는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서울대 합격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교문 위에 붙는 것과 같은 목표라는 생각입니다.

분명 우리 교육의 목표는 학교에 오는 모든 아이들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마치 서울대 합격이 학교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되는 학교에서 서울대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적 글로벌 인재’라는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배워야 할 내용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지식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요? 각 단원의 학습 내용과 그것을 통해 도달해야할 목표를 보면 전공을 한, 배워야 할 학생이 아니라 가르쳐야 할 교사의 입장에서도 숨이 막힙니다.

아이들의 등교시간부터 생각해봅시다. 학생들 아침밥 먹기 운동을 벌이기 전에 아이들이 아침에 여유 있게 학교에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직장에 다니는 어른들보다 더 일찍 학교에 가야 합니다. 교사들의 출근시간과 학생 등교시간은 별개이니 절대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9시쯤 학교에 와서 오전에 3시간 오후에 2~3시간 수업을 하는 것으로는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아이들의 수업 중 가장 많이 확보되어야 하는 교과는 예체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체육이나 음악 미술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즐거움과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교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체능교과의 집중이수제는 절대 반대입니다.

우리 아이들 좀 놀게 하면 안 될까요?

학부모님들과 학교가 다 같이 마음먹는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중학교 1학년 담임을 했는데 저희 반은 내일 시험이라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피구를 합니다. 그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봐야 시험을 잘 칠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피구를 하면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고 노는 시간이 있어야 더 공부를 잘 할 거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보여 준 결과도 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시험 치기 전 날 혹시 음악 선생님이 자습을 주실까봐 미리 저희 반 아이들은 노래를 너무 부르고 싶어 하니 꼭 수업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기도 했었답니다.

 

지금 학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자꾸 반복되는 것 같지만 학부모와의 소통이 가장 절실하고 시급합니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보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원하는 교육이 무엇인가에 따라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며 집이 아닌 학교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학교와 대화를 통해 이것을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과정에 탄력성이 부여되었지만 대부분 영수교과 시간을 늘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부모님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 성적 좋은 학교를 가장 원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당연하다 말씀하시겠지만 우리 아이들의 인생에 대한 진로 설계를 하는 부분에서부터 부모님들과 아이의 소통이 잘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교생 10명 중 1명이 교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 중 꿈을 이루어 교사가 될 수 있는 있는 아이는 몇 명일까요? 한 해에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되는 사람의 수를 생각해보면....

그러니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너만은 꼭 합격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몰아붙이다가 안 되면 공무원 시험 치라고 할 건지요?

 

다음으로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한 교사의 전문성 신장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학생들과의 관계형성입니다. 하지만 저도 사범대학을 나왔지만 그것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습니다. 교육학 이론과 상담에 관해 공부를 하지만 현장에서 요구되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범대학을 다니는 큰 아이의 친구가 현장 교사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입학식 날에 아이들에게 교사가 명함을 준다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이러는 겁니다.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방법에 관한 수업을 할 때 한 학생이 명함 이야기를 하자 교수님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이야기 했고 다들 깜짝 놀랐는데 명함을 주는 교사가 진짜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자신들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차라 허탈하기도 하다고. 그 교수님은 중고등학교 현장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하고 계시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범대학생들은 이론만으로 중무장을 하고 현장에 오는 것이지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더니

“아, 씨이~~~ 뭔데. 졸려 디지겠는데 누가 깨우고 난리야.”

하고는 다시 엎드려버리는 아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준비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수업에 대한 전문성은 교사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으니 여기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조차 안 된다면 저는 감히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선생이, 당신은 얼마나 잘해서 그런 말을 하는거냐고 하실 분들 많을 겁니다. 앞에서 학부모님들께 목을 내놓았듯이 지금 동료 교사들에게도 그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공교육의 교사는 그 어떤 수업이든 공개수업이 원칙이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누가 언제라도 내 수업을 보고 싶다고 할 때 흔쾌히 교실 문을 열 수 있는 수업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교사의 가장 기본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수업이 완벽할 수는 없어도 기꺼이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은 공유입니다. 수업이든 학생 지도든 교사들 사이의 공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입니다. 교사 연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교사라면 읽어보았으면 한다고. 책 속의 윤수가 쓰는 블루 노트.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하고 공책에다 피를 토하듯이 쓰는 윤수의 블루 노트. 나와 만나고 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윤수와 같은 블루노트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세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한 아이의 블루노트를 발견하였지만 두려웠다고. 저 아이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괜히 아는 척 했다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던 기억. 그러면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구실 찾기. 어차피 이건 내 힘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눈감고 가잖아. 그냥 나와 같이 있을 때 문제만 터지지 않고 조용히 간다면... 그러기를 바라는 수밖에, 하며 외면하려 애썼던 이야기를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직업이 아닌 교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교사가 자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통의 무게를 알아주기만이라도 한다면, 자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보려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그러니 수많은 윤수들을, 윤수의 블루노트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자해를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전날 아이는 7교시 수업을 하는 동안 7번 혼이 나거나 교실 밖으로 쫓겨났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는 교과시간마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고 그 전 시간에 대한 것은 전혀 공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1교시에 수업 태도가 나쁘다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2교시에 기분이 좋지 않아 엎드려 있다가 또 꾸중을 들었고 3교시에는 아예 수업에 참가하지 않고 만화책을 보다가 빼앗겼고, 4교시에는 잘 해보려 애쓰고 있는데 뒤에 앉은 아이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참지 못하고 돌아보며 욕을 한 마디 했는데 복도에 나가 서 있으라는 벌을 받았고요. 그러다보니 7시간 동안 내내 혼이 나거나 벌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중학교 1학년 아이가 자신의 손등과 손목을 칼로 그은 이유는 숨통이 막혀서라고 했습니다. 통제가 심한 집과 초등학교 3학년부터 다니는 학원 때문에 숨이 막히는 나날들을 살고 있는데... 그래서 학교에서라도 숨을 좀 쉬고 싶어서... 학원 수업에서 엎드리면 일일이 문자로 집에 다 연락이 가니 학교에서는 그렇게 까지는 안 하니까 수업 시간에 장난도 치고 딴 짓도 좀하고 졸리면 엎드리기도 한다고.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곳이 학교라고. 그런데 학교에서도 계속 혼이 나니 정말 죽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해를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학원에만 안 다닐 수 있으면 살 것 같다는 아이.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만나자 아이 등짝을 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리면서 이러시더군요.

“그렇게 힘들었으면 진즉에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이게 무슨 꼴이니 남부끄럽게. 그리고 팔과 손등의 흉터는 또 어쩌고. 정말 너 때문에 못살아, 알았어. 학원이 그렇게 힘들면 일주일 쉬자, 됐지? 한 번만 더 이런 일 생김 죽을 줄 알어? 아휴 속상해 미치겠어.”

그 일이 있고 저는 저희 반에 들어오시는 모든 교과 선생님께 아이 이야기를 말씀 드리고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해주시고 아이가 많이 아파하고 있으니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시각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아이, 교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교사들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적습니다. 그 시간에 30명의 아이들을 모두, 그리고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시각각 많은 메시지를 표현하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서로 공유를 한다면, 우리 반 아니 당신 반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는 입장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공유한다면 아이들을 알아가고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아이의 이야기는 허락을 받고 공개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이의 치유와 변화도 가능했고 이렇게 사례를 공개하는 것에도 동의를 해주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어머니와 아이 모두 제 블로그에 오고 가끔 글도 남겨주시는 분들이거든요.

 

아이들이 불행합니다. 너무 많은 공부와 기대로 아이들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불행하니 자신보다 불행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치면 서로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라면

“아, 미안.”이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서로 날이 선 상태인지라 아이들은 상대를 향해 자신의 고통을 휘두릅니다.

“아, 씨X 뭔데?”라는 욕설과 째려보는 눈빛으로.

아이들은 쎈 척하기 위해 욕을 하고 서열을 정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쎈 척하고 싶어 할까요? 남보다 한 등이라도 앞이라야 한다는 등수에 매달리는 부모에게서 아이들은 공부로 앞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다른 것으로라도 센 척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밀리면 지는 것이고 그것은 곧 실패라고 배우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책임이 학교와 교사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사회는 교사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교사는 전문가들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까지도 치유해줄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 교육도 결국은 학교의 몫이다. 학부모회 등을 통해 부모 교육을 실시하라. 학부모가 원하는 입시위주의 성적 좋은 학교도 만들고 인성교육도 열심히 하여 청소년 폭력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라. 피해자들의 상처도 학교가 치유해주고 가해자들도 잘못을 뉘우치도록 잘 지도하라. 그리고 또 이런 문제가 일어나면 다 너희 잘못이니 책임도 져라.

고교생 원하는 직업 1순위가 교사라는 신문보도와는 달리 현장의 선생님들은 학교를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명예퇴직 신청이 너무 많아 다 수용을 하지 못해 퇴직 순서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지금까지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이 상처받고 허탈한 심정으로 학교를 떠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학교를 떠나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신학기에 담임만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담임이 책임이라는 식으로 이렇게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 한들 누가 알아줄 것이며, 혹여 그러다가 정말 문제라도 생기면 그동안 애쓴 그 모든 것은 다 묻혀 버리고 ‘담임 니 책임이다’만 남게 될 텐데 내가 뭐하러.... 이런 마음도 솔직한 심정입니다.

요즘 교사들에 관한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글이 있습니다.

“교사 힘들다는 말 하는데 힘들면 그만 둬라. 너 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줄을 서 있으니 그만 두면 될 거 아냐?”

정말 다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교사들에게 몰매를 때려 다들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놓고 앞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에너지와 소명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교사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계를 돌리는 직업도 아닙니다.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렇게 상처받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며 환한 웃음을 웃어 줄 수 있을 지 저 스스로가 걱정이 태산입니다. 교원평가에서 학생들로부터 좀 그만 웃으라는 말을 듣는 저인데도 말입니다.

청소년 폭력은 ‘너!’로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어난 문제를 책임질 누군가보다도 앞으로의 아이들의 교육 아닐까요? 우리에게 교육하고 싶어질 수 있을 정도의 치유가 필요함을 제발 알아주십시오. 상처를 안고 신학기를 맞고 아이들을 만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으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가 점점 더 싫어지고 무서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 담임에게 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교사들을 더 신뢰하지 않고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열배 백 배 더 큰 열정으로 다가가도 그 벽을 허물 수 있을까 싶은데 지금 저희들에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교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학교와 교사가 청소년 폭력과 전혀 무관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저희 스스로도 학교와 교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반성하고 그 길을 찾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을 하려는 의지정도는 남겨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모든 학교를 문을 닫거나 지금 있는 교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새로운 교사로 싹 갈아치우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묵묵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해온 많은 선생님들이 있음을 기억해주시고 그분들이 계속 아이들을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운은 남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바람을 가진다면 부디 저희들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다시 교육현장으로 달려가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할 용기를 제발 부탁드립니다.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우리 교육의 목표에 대한 재고

(2) 학생들의 수업 시간과 학습의 양을 줄여야 하는 필요성의 인식과 해결 방안

(3) 학부모와의 소통을 방법

(4) 부모교육은 학교가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지만 교사들의 업무 증가와 학교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진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의 어려움

(5) 교사들의 자각과 전문성 신장을 위한 노력

(6) 교사 업무와 수업시수 줄이기

(7) 사범대학의 현장과 연계된 수업과 교육과정

(8) 제대로 놀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놀이 교육의 필요성과 방법

 

4.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사회로의 접근

씨크릿 가든의 현빈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

보스를 지켜라의 지성

브레인의 신하균

난폭한 로맨스의 이동욱

드라마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근 1년 동안 드라마들을 보면서 나름 분석과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 배우들이 맡은 역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아주 인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럼 그들의 극중 성격은 어땠을까요?

요즘 누구나 할 것 없이 ‘인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마디로 인성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에게 열광을 합니다. 까도남이다, 신하균 앓이다 별별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내며 ‘나쁜 남자’를 최고의 매력남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들을 사랑하는 우리 사회가 정말 슬프고 마음 아프다는 생각입니다. 이들 드라마에는 또 꼭 착한 남자가 나옵니다. 따듯하고 예의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정말 한 마디로 인성교육을 잘 받은 표본 같은 남자. 하지만 그들은 사랑의 실패자로 그려집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다른 나라 영화들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조폭 영화가 많고 조폭들이 미화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에게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 제공되고 있습니다.

‘원더풀 라디오’ 같은 영화는 인기를 크기 얻지 못합니다. 너무 뻔하고 착한 영화라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 영화에서 부모와 아이의 소통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꼭 부모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흔들리기까지 했었습니다.

아내가 데리고 온 딸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게 하는 새 아버지에게서, 표절한 작곡가라며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엄마에게서 진정한 부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탁소를 하고 감자탕 집을 하며 ‘부모교육’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진정한 ‘어른들’이고 ‘부모’였습니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청소년 폭력 문제를 다루고 그 책임을 이야기할 때 그 기사를 이 나라의 모든 학생들이 본다는 생각으로 너무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인 단어들을 피하고 기사 내용의 전달 시 매우 신중해야 하며 사건을 파헤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예방, 해결 방법을 찾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힘을 합해 꼭 해주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가출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아이들 중에는 가정이 가장 힘든 지옥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이 너무도 힘든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회가 함께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당장 지친 몸을 눕게 할 공간과 상처를 위로 받을 따듯한 말 한 마디가 절실하고 내일 학교에 갈 차비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사회 전체가 공동육아의 마음으로 끌어안아야 할 것입니다.

내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의 친구들을 함께 돌본다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원봉사를 통해 충분히 그 아이들을 키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의식과 변화를 위한 참여 방안

(2) 공동육아를 위한 시설과 운영에 대한 문제

(3) 청소년 폭력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와 책임

(4) 입시위주 교육을 심화시키는 학력 위주의 사회

(5)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 대한 치료를 병행한 교화 프로그램의 필요성

 

이 글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와 달리 글이 너무 길어져버렸고 뒤로 갈수록 글의 길이에 압박을 받다보니 급하게 마무리하는 것처럼 되어 버려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름 글로 정리를 해보니 제가 조금 기운을 차릴 것 같습니다. 꼬박 15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고민하며 쓴 글입니다. 솔직히 학교에 다시 간다는 것이,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럽고 1%의 의욕도 없이 며칠을 보냈었거든요. 하지만 분명 이렇게 시작하여 방법들을 찾다보면 분명 길이 보일 거라는 믿음을, 희망을 다시 가져봅니다.

청소년 폭력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함께 마음을 모아 해결해가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다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한 아이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다치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

늘 그렇듯 ‘언어가 진실에 미치지 못함’에 안타까움과 큰 아쉬움을 느끼며 마칩니다.

출처 : 모성애결핍증환자의 아이 키우기
글쓴이 : 이민서♥이영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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